완성품 대신 레시피를 공유하는 시대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서비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발하고, 서버 올리고, 사용자 모으고. 그게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방법이었으니까요.
근데 지금은 누구나 AI랑 개발할 수 있습니다. 받는 사람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된 겁니다.
그러면 꼭 완성품까지 만들어야 할까요?
최근에 재밌는 걸 봤는데, 사주 풀이 앱이 챗봇을 만들어서 돈 받는 대신 프롬프트를 그냥 풀어버렸습니다. "이거 복붙해서 원하는 LLM한테 넣어보세요." 끝입니다.
밥줄을 공개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쪽이 합리적입니다.
만드는 쪽 입장에서는 — LLM 비용 안 들고, 서버 비용 안 듭니다. 돈을 받으려면 그만큼 퀄리티도 보장해야 하고 CS도 해야 하고, 신경 쓸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프롬프트 하나 공유하면 그 부담이 다 사라집니다.
받는 쪽 입장에서는 — 오히려 더 좋습니다. 추가로 질문할 수도 있고, 궁금한 거 이어서 물어볼 수도 있고. 내 정보가 서비스 제공자한테 안 가고, 추가 비용도 없습니다.
양쪽 다 이득인 구조입니다.
근데 사실 모든 아이디어가 서비스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우리가 가진 선택지는 보통 두 개였습니다. 만들거나, 안 만들거나. 서비스로 만들어서 돈을 받을 만큼의 확신이 없으면 그냥 묵혀두는 겁니다. 메모장에 적어두고, 언젠간 하겠지 하다가 잊어버리는 거죠.
근데 그 아이디어들이 가치가 없는 건 아닙니다. 돈이 될 만큼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쓸모 있는 것들. 이 애매한 영역에서 "중간재 공유"가 작동합니다.
프롬프트를 공유하면 사주 앱이 되고, PRD를 공유하면 누군가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됩니다. 아이디어 전체를 실행할 필요 없이, 생각을 정리한 문서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전달됩니다.
이건 단순히 "공유하면 좋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아이디어가 유통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예전의 아이디어 유통은 일방향이었습니다. 만드는 사람이 완성품을 만들고, 쓰는 사람이 소비한다. UI도, 기능도, 가격도 만드는 사람이 결정합니다.
중간재를 공유하면 이 관계가 달라집니다. "내가 다 만들어줄게"가 아니라 "만들기 좋은 재료를 줄게"가 되는 겁니다. 받는 사람의 능력을 전제하는 공유 방식입니다.
완성품을 서비스하는 게 아니라 레시피를 주는 겁니다. 받는 사람이 자기 부엌에서 자기 입맛대로 해먹을 수 있게.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오히려 레시피 한 장이 더 멀리 갈 수도 있습니다.